캐나다 공영방송 CBC가 2001년 9·11 공격을 보도하면서 ‘테러 공격’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 말도록 기자들에게 안내한 내부 지침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해당 지침은 9·11 25주년을 앞두고 CBC 뉴스의 저널리즘 기준 담당자인 바셈 보슈라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캐나다 언론인 워런 킨셀라가 공개한 뒤 캐나다와 미국을 비롯한 여러 해외 매체가 잇따라 보도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CBC는 기존 방침을 재검토했고, 8월 28일 9·11을 역사적 테러 사건으로 설명할 경우 별도의 출처 귀속 없이 ‘테러’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수정했다.
공개된 CBC 내부 지침에는 기자와 편집자들에게 “9월 11일 공격을 테러 공격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취지의 안내가 포함돼 있었다. 대신 항공기 납치범들이 여객기를 납치해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 맨해튼 등에서 충돌이 발생했고 세계무역센터가 파괴됐다는 방식으로 사건을 기술하도록 제시했다. 지침 작성자는 CBC 뉴스의 저널리즘 표준 및 공공 신뢰 담당 수석 디렉터인 ‘바셈 보슈라’였다.
CBC 측은 해당 지침이 특정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지 않는 장기간의 편집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CBC 대변인 케리 켈리는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즘’이라는 표현이 정치적·감정적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하며, 관련 표현을 공식 출처에 귀속시키는 방식이 기존 원칙이었다고 밝혔다. CBC는 이러한 방식이 다른 주요 국제 언론사의 보도 관행과도 유사하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언론이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디까지 사건을 규정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특히 9·11은 단순한 항공기 납치나 항공 사고가 아니라 알카에다 조직원 19명이 민간 항공기 4대를 계획적으로 납치해 미국 내 주요 목표물을 공격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표현의 적절성이 쟁점이 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공식 역사 자료에서 9·11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FBI에 따르면 당시 공격으로 2,976명이 사망했고, 19명의 납치범은 모두 알카에다의 훈련을 받은 인물이었다. FBI는 이 사건을 대규모 테러 공격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이 사건의 배후였다는 사실도 공식 자료에서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CBC의 내부 지침은 언론의 객관성과 사실 전달 사이의 경계를 둘러싼 논쟁을 촉발했다. 언론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표현을 자제하는 것은 특정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나 정치적 판단을 보도에 개입시키지 않기 위한 장치가 될 수 있다. 반면 이미 공식 기록과 수사기관의 자료에서 사실관계가 확립된 사건까지 특정 단어의 사용을 제한할 경우,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언어적 절제가 오히려 사건의 성격을 흐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이번 논란은 과거 CBC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 공격을 보도하는 과정에서도 ‘테러리즘’이라는 표현의 직접 사용을 신중하게 다루면서 논쟁이 발생했던 사례와도 연결된다. CBC는 당시에도 테러라는 용어가 정치적·감정적 함의가 크다는 이유로 출처 귀속 원칙을 강조해왔다.
결국 이번 사건은 단순히 CBC의 특정 표현 하나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언론이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자체적인 판단과 규정을 개입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언론의 자유는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사실을 검증하고 전달할 권리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가 편집권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의 성격을 임의로 재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논쟁의 대상이 됐다.
특히 공영방송이나 대형 미디어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큰 언론기관의 언어 선택은 일반적인 개인의 표현과 다른 무게를 가진다. 특정 표현을 배제하거나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대중이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의 중립성이 사실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확인된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과정에서도 적용되는 원칙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이번 CBC 사례는 그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건이다. CBC가 논란 이후 9·11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테러’ 표현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지침을 수정한 것은 이러한 논쟁에 대한 하나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논란이 보여준 것처럼 영향력 있는 언론의 편집 지침이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언어와 충돌할 경우, 언론의 객관성과 편집권의 범위에 대한 사회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